영양제만 사서 먹이고 있다면 순서가 뒤집힌 게 맞습니다. 먹이고, 움직이게 하고, 재우는 쪽이 먼저입니다.
운동이 성장호르몬을 크게 올린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건강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동 전후 호르몬을 잰 연구에서 성장호르몬은 평균 558% 올랐습니다. 함께 측정한 프로락틴이나 코티솔보다 반응 폭이 컸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합니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는 것과 키가 자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소방차 비유는 맞습니다
영양제가 잔잔히 물을 주는 정원사라면 운동은 물대포를 쏘는 소방차다. 반응 폭만 놓고 보면 맞는 비유입니다.
아이들에게 고강도 인터벌 운동을 시켰더니 성장호르몬이 유의하게 올랐고, 그 상승폭이 병원에서 쓰는 약물 자극 검사 결과와 높은 상관을 보였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상관계수가 0.8대였습니다. 운동이 약물에 준하는 자극이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아르기닌 같은 경구 보충제도 성장호르몬을 올리기는 하지만 폭이 그만큼 크지 않습니다.
숫자 하나는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희도 ’20분에 5배, 영양제는 1.5배’라는 비교를 자료에서 확인해 보려 했습니다. 이 두 수치를 나란히 놓고 잰 연구는 찾지 못했습니다. 방향은 맞지만 배수는 연구마다, 아이마다, 사춘기 단계마다 달라집니다.
물을 많이 쏜다고 건물이 빨리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앞선 글에서 뼈가 자라는 과정을 아파트 공사에 비유했습니다. 칼슘이 시멘트, 라이신이 철근, 아연이 인부, 성장판이 공사장이었죠. 성장호르몬은 그 공사를 돌아가게 하는 조건 중 하나입니다. 물의 양이 건물 층수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인 근육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실험했습니다.
한쪽 팔만 운동시켜 호르몬이 거의 안 오르는 조건을 만들고, 다른 조건에서는 하체 운동을 붙여 성장호르몬과 테스토스테론이 확실히 치솟게 만든 연구가 있습니다. 15주 훈련 뒤 근비대와 근력을 비교했더니 두 조건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호르몬이 솟은 쪽이 더 자라지 않았습니다.
많은 인원을 모아 본 연구에서도 운동으로 올라간 성장호르몬·유리테스토스테론·IGF-1의 상승 면적과 제지방량·근력 증가 사이에 유의한 상관이 없었습니다.
물론 근육과 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성장호르몬이 어린 시절과 사춘기에 성장에 결정적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매일의 일시적인 상승 폭이 크다고 그만큼 더 자란다는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이걸 직접 확인한 연구 자체가 없습니다.
성장호르몬 수치는 운동을 잘했다는 지표에 가깝습니다. 성적표이지 성적을 올리는 수단이 아닙니다.
젖산이 스위치일까
“심장이 터지게 뛰어야 젖산이 쌓이고, 그래야 뇌하수체가 켜진다.”
젖산이 많이 쌓이는 운동에서 성장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건 맞습니다. 다만 젖산이 혼자 스위치를 누르는 건 아닙니다. 강도를 단계적으로 올리며 측정한 연구를 보면 젖산이 치솟는 그 지점에서 카테콜아민도 함께 치솟습니다. 둘 중 무엇이 원인인지 이 데이터만으로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건 이겁니다. 예전에는 ‘역치를 넘어야 성장호르몬이 나온다’고 봤는데,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운동 강도가 올라갈수록 성장호르몬 상승폭이 비례해서 커진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게 좋은 소식입니다. 꼭 심장이 터질 때까지 몰아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숨차게 놀았으면 그만큼 올라갑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닙니다.
그럼 운동은 왜 시켜야 하나
호르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유가 더 확실한 쪽이 따로 있습니다.
뼈에 실리는 자극. 뛰고 점프하는 동안 뼈에 실리는 힘이 뼈 형성을 자극합니다. 사춘기 이전이 골밀도를 쌓기에 가장 유리한 시기일 수 있다는 논의가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성인이 된 뒤 골절 위험까지 내다보는 이야기입니다.
잠. 몸을 쓴 날 아이가 더 잘 잡니다. 성장호르몬은 깊은 잠에 분비가 몰립니다.
식욕. 뛰어논 아이는 잘 먹습니다.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단백질 총량 문제가 여기서 풀립니다.
운동의 값어치는 채혈해서 잰 숫자가 아니라 이 세 가지에 있습니다.
세 살에게 20초 전력질주를 시켜야 할까
좀비 놀이 자체는 좋습니다. 그 형식을 초시계로 관리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20초 질주에 40초 회복 같은 인터벌 프로토콜은 대체로 학령기 이상 아이들을 대상으로 검증됐습니다. 세 살, 네 살 아이의 평소 노는 모습을 보시면 이미 그 구조입니다. 갑자기 뛰다가 멈추고, 웃다가 또 뜁니다. 연구자들이 어린아이의 자발적 신체활동을 ‘짧고 강한 활동의 반복’이라고 기술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하고 있는 걸 초시계로 관리하면 놀이가 숙제가 됩니다. 그 나이대에 필요한 건 프로토콜이 아니라 마음껏 뛸 시간과 공간입니다.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질주와 회복을 번갈아 하는 짧은 인터벌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체력과 순발력을 끌어올린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나이에 맞춰 쓰시면 됩니다.
과하면 반대로 갑니다
한 가지 더 남겨 둡니다.
사춘기 전후 남자아이들에게 5주간 지구성 훈련을 시켰더니 성장의 실제 집행자인 IGF-1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한 번의 운동이 만드는 급성 상승과, 몇 주간 몰아친 훈련이 만드는 만성 변화는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루 15분 놀이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많이 할수록 좋다”로 밀고 나가면 안 되는 이유는 됩니다.
자주 받는 질문
영양제를 끊어야 하나요?
끊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식사와 운동, 잠이 먼저고 영양제는 그다음이라는 순서 문제입니다.
좀비 놀이를 매일 15분 하면 키가 얼마나 크나요?
답할 수 있는 연구가 없습니다. 골밀도와 체력, 수면과 식욕에서 얻는 게 확실하니 그쪽을 보고 하시는 게 맞습니다.
운동 강도가 약하면 의미가 없나요?
강도가 높을수록 성장호르몬 반응이 큰 건 맞지만, 넘어야만 하는 선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숨이 차는 만큼 올라갑니다.
성장호르몬은 의약품으로 쓰이는 호르몬이며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과는 무관합니다. 칼슘은 뼈와 치아 형성에 필요하고, 비타민D는 칼슘과 인이 흡수되고 이용되는 데 필요하며 뼈의 형성과 유지에 필요합니다. 키를 키운다는 표현은 인정된 기능성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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